황해도 평산 지방의 소놀음굿은 농경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의 하나이다. 소는 농경 생활에서 경작은 물론 탈곡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고대 문헌에 의하면 부여에서는 제천 의식(祭天儀式)때 소를 잡아 발굽으로 점을 치고 소를 재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본기」에도 신라에서 소의 경작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의 소놀음굿은 '소머리굿', '소굿', '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면서 무당이 주관하는 굿의 칠성제석거리 말미에 이어 놀아졌다. 이 굿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오래 전부터 굿판에서 농경 문화와 연관된 소를 등장시켜 대동적인 놀이를 벌여 온 것만은 확실하다.
볏짚이나 가마니, 멍석으로 소와 송아지를 만들어 사람이 쓰고 이것을 마부가 몰고 다니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대사를 하는 형식의 굿놀이는 형재 경기도 양주와 황해도 평산, 그리고 옹진에서 전승되고 있다. 소를 동반한 이 굿놀이는 사람이 소로 가장하여 몰고 다니면서 가무악을 동반하여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는데, 풍농을 기원하고 액을 쫓으며 마을 주민들의 대동 단결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은 여러 면에서 경기도 양주 소놀이굿과 비교된다. 이 두 굿은 모두 경사굿에서 제석거리에 이어 놀아지고 그 기원을 농경 의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같다. 그러나 연무대와 주역 등이 다소 다르다. 양주 소놀이굿의 놀이판은 굿의 주무대였던 마루에서 봉당과 앞마당으로 옮겨지고 주역이 무당에서 마부로 바뀐다. 굿의 진행도 마부 중심으로 연희로서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 주역인 마부의 마부타령이 주가 되어 주로 소에 관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에서는 제석이 중심이 되어 마부를 상대로 타령과 대담을 엮어 나가는데, 여기에서 제석신은 농경신 및 생산신으로서의 성격을 보여 준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은 경사굿에서 제석굿에 이어 굿판이 집안 마루에서 마당으로 옮겨지면서 시작된다. 제석거리가 끝날 때쯤이면 굿청으로 마련된 마루에는 하늘에서 8선녀가 하강할 때 타고 내려올 수 있도록 여덟 개의 무지개를 상징하는 천을 늘어뜨려 놓는다. 그리고 8선녀가 하강한 다음 지상에서 목욕하는 곳이라 하여 여덟 개의 물통에 각각 물을 담아 두고 바가지를 띄운다. 이것은 소놀음굿에 등장하는 8선녀가 소놀음굿을 벌일 때 하강하여 인간들에게 복을 주고 승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석 역을 맡은 주무(主巫)는 흰 장삼에 고깔을, 삼제석 역은 가사와 염주에 제석굿 복식을, 마부는 바지저고리에 벙거지를, 어미보살은 치마저고리에 머릿수건과 허리에 조트래(바구니)를 찬다. 지장보살은 치마저고리에 호미를, 신농씨(神農氏) 역은 갓에 도포를 입고 책을 든다. 어미소 역과 송아지 역은 종이로 만든 쇠머리를 잡고 덕석(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 주는 멍석)을 뒤집어 쓴다. 동원되는 만신은 여섯 명이고 악기는 장구, 징, 저의 삼잡이가 맡는다.
소놀음굿의 형식
소놀음굿이 시작되면 먼저 옥황상제님에게서 전갈이 왔다며 백지를 제석님에게 갖다 준다. 제석님이 그것을 읽고 타령조로 사설을 부르면 나졸들은 끝머리 사설을 만수받이로 받아,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지상에 내려와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제석님은 거상춤을 추면서 재배하여 옥황상제님께 조선국에 무사히 나왔음을 알린다. 이렇게 천상의 놀이가 끝나면 지상의 놀이로 넘어간다. 이제 농신, 산신, 수복신을 겸한 제석이 중신이 되어 마부를 상대로 타령과 대담을 엮어 나간다.
바지저고리 차림에 벙거지를 쓴 마부가 논갈이를 하는 어미소를 끌고 들어오면 송아지가 뒤를 따른다. 이때 마부는 제석님과 재담이나 노래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소를 끌고 다니며 밭갈이를 한다. 어미보살은 치마저고리에 머릿수건을 쓰고 허리에 조트래를 찬다. 치마저고리에 호미를 든 지장보살이 김을 매면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책을 든 신농씨가 농사일을 감독하는 시늉을 한다.
이어서 소부리기, 쟁기 보습맞추기, 방차찧기, 지정다지기, 아이점지하기, 복내리기 등의 놀이가 이어진다. 이때의 모든 음악은 굿판에서 사용되었던 무속 음악으로 연주된다. 이어서 쌍그네 작두타기가 이어지는데 그네 작두타기는 쌍작두를 약 4미터 높이의 그네에 매어 놓고 그 위에서 작두를 타면서 동시에 그네를 뛴다. 그네 작두를 타기 위해 작두에 잡귀가 범하지 못하고 부정한 것이 없어지도록 산신님과 장군님을 청한다. 그네 작두를 타고 난 다음 모든 소놀음굿을 끝낸 제석님은 소를 타고 나졸들은 춤을 추며 굿판을 돌아 서천 서역국으로 떠난다. 이로써 소놀음굿은 끝나고 나머지 굿거리들이 다시 이어진다.
평산 소놀음굿의 특징
평산 소놀음굿은 무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무당들에 의해 진행되는 놀이이지만 한편으로 불교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평산 소놀음굿의 주된 내용은 단군님을 맞이하는 것과 제석님이 내려와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으로 꾸며진다. 무당이 청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제석님은 인간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친 다음 다시 하늘에서 데리고 온 나졸들과 함께 승천한다. 따라서 소는 농경신 또는 농경신의 사자(使者)로서 등장하며 지역 사회 주민에게 소놀이굿을 통해 풍요를 기원하고 주민들 사이의 화합을 다지는 기회가 된다. 이러한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이 가지는 오락성, 예술성의 기능이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평산 소놀음굿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은 평산 출신인 무녀 장보배가 일제 때 그녀의 신어머니 김씨에게 배워 그곳 굿판에서 놀았던 것이다. 해방 후 강화도로 월남하여 살다가 신딸 이선비를 얻었다. 1985년 장보배는 이선비를 마부로 하여 인천에서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을 재현하였다. 이 굿은 1988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저오디었고, 장보배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녀가 타계한 뒤에는 이선비가 마부•그네 작두타기의 보유자로, 악사 이창호와 무녀 윤정화가 조교로, 지정다지기의 안금순이 보조자로 인정되었다.